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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사찰

구례 화엄사

by 이우유 2019. 1.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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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구례 화엄사 (華嚴寺)

구례화엄사는 전부터 꼭 가보고 싶었던 절 중 하나였다. 온천여행을 핑계 삼아 지리산온천랜드에 왔다가 화엄사에 들러 각황전, 석등과 사자탑 등을 둘러보고 왔다. 방문한 날짜탓(?)인지, 한껏 움츠러드는 날씨탓(!)인지 찾는 이가 많지 않아 사찰은 한산했다. 조용히 생각을 정리하며 2018년을 갈무리하기 좋은 그런 12월의 어느날이었다.

 

구례 화엄사 각황전

화엄사(華嚴寺, 전라남도 구례군)는 6세기 중엽 (544년 백제 성왕) 인도에서 온 연기조사에 의해 창건된 것으로 전해진다. 이후 신라의 자장율사와 의상대사, 고려의 대각국사 의천 등 여러 고승에 의해 중창되어 조선 세종 6년 (1424년)에는 선종대본산으로 승격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임진왜란 때 5,000여 칸의 건물이 전소되고 주지였던 설홍대사는 300여 명의 승려를 이끌고 왜군에 대항하다 전사하는 고난을 겪기도 하였다. 석조물을 제외하고 현재 남아있는 전각들은 모두 임진왜란 이후에 세워진 것들이다.

 

일주문, 금강문, 천왕문을 차례로 지나 보제루 앞마당에 들어서면 높이 쌓아올린 대석단을 중심으로 아래로는 승방과 강당 등의 수행공간이, 위로는 대웅전과 각황전을 비롯한 예불공간이 자리잡고 있다. 눈여겨 볼 것은 각황전과 대웅전을 중심으로 절묘하게 조화된 가람배치의 아름다움이다. 또한 사사자삼층석탑과 공양석등에 전해오는 연기조사와 어머니의 효 이야기도 발길을 끌고, 각황전 앞의 석등과 모과나무 기둥이 독특한 구층암 등도 화엄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볼거리들이다.

 

화엄사 입장료

숙소였던 지리산온천랜드호텔에서 대한불교조계종 제19교구본사 지리산 대 화엄사까지는 약 20km 거리로 차로 20여 분 정도 소요되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화엄사는 지리산 국립공원 안에 위치하고 있어 문화재 구역 입장료를 징수하는데, 어른은 3,500원이고 청소년은 1,800원, 어린이는 1,300원이다. 매표소에 차를 멈추면, 직원이 인원수 파악후 요금이 얼마라고 알려준다. 요금을 지불하면 영수증과 거스름돈을 내어준다. (현금결제하였는데 카드도 가능한지는 확인하지 못했다.)

 

어쩌다보니 화엄사에 방문한 날이 2018년 12월 25일, 크리스마스였다. 매표소 앞에는 '아기예수님 탄생을 축하합니다'라는 현수막이 크게 걸려 있었다. 근처에 공사중인 구간이 있어서 사진으로 아름답게 담지 못해 아쉽지만, 문구가 인상 깊어 후다닥 찍었다.

 

날짜탓인지 날씨탓인지 화엄사는 한산했다. 주차장도 매우 여유로워 편하게 주차를 할 수 있었다. 주차장 앞에는 공중화장실이 있는데 난방도 되고 공중화장실 치고는 깔끔한 편이라 편하게 이용할 수 있었다.

구례 화엄사 입장료는 다소 비싼 편이긴 하지만, 주차요금은 다행히 무료이다.

 

구례 화엄사 가는길

벽암국일도대선사비

올라가면서 보니 템플스테이 수련원도 보였다. 관심이 있어 팜플렛을 챙겨왔는데 템플스테이 프로그램 종류가 다양하여 기회가 되면 한번 체험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체험형(하절기, 1박 2일), 휴식형(자유 휴식형), 완전 휴식형, 당일형(와선, 컵연 등 만들기), 특별 체험형, 단체 체험형 등으로 다양했다.

 

사찰의 대문역할을 하는 금강문

불법을 수호하는 사천왕을 모신 천왕문

왼편의 나무는 박정희 대통령 기념식수(1964년 9월 7일)라고 한다.

중앙-종루 / 오른쪽-보제루

보제루 (지방 유형문화재 제49호, 1636년 건립) 화엄사는 보제루에도 특별함이 숨어 있다. 승려나 신도들의 집회용인 2층 누각 건물로 대개는 그 밑을 지나 대웅전으로 들어서게 되지만, 화엄사의 보제루는 1층의 기둥 높이를 낮게 만들어 옆으로 돌아가게 되어 있다. 각황전, 대웅전, 대석단 등이 장엄하게 펼쳐지는 중심 영역의 경관을 강조하기 위한 배려로 보인다. 장식을 배제하고 단청도 하지 않아 절제된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다.

 

지리산 대 화엄사

화엄사 각황전

각황전 (국보 제67호)은 신라 문무왕 17년(677)에 의상대사가 2층 4면 7칸의 장육전을 건립하고 사방벽에 화엄석경을 세겼다. 임진왜란 때 병화로 완전히 소실되었으나 1702년(숙종28)에 복원하였다. 1만여 점의 화엄석경은 조각난 채 따로 보관되고 있다.

 

 

화엄사에 대한 정보가 없이 간 터라 처음엔 이곳이 사람들의 이목과 발길을 사로잡고 규모면에서도 월등하여 각황전이 대웅전인 줄 알았다. 서탑(서오층석탑, 보물제133호)과 석등(각황전 앞 석등, 국보 제12호), 사자탑은 나무에 가려 잘 보이지 않는다;;;

 

화엄사 대웅전

대웅전 (보물 제299호) 정면 5칸 측면 3칸의 다포계 팔작지붕 건물이다. 동서 5층 석탑이 있는 넓은 마당에서 4칸으로 이루어진 높은 계단을 오르면 대웅전 앞이다. 내부 중앙에 비로자나불을 주불로 모시고, 좌우에 노사나불과 석가모니불을 협시불로 모셨다. 불상 뒤에는 보물 제1363호인 화엄사대웅전삼신불탱이 있다.

 

동오층석탑 (보물 제132호) 화려한 서오층석탑에 비해 장식이 없다. 일반적인 통일신라 석탑과 달리 기단이 단층으로 이루어져 있고, 탑신의 각층 몸돌 괴임대도 1단으로 생략되어 있으며, 지붕받침도 1단으로 줄었다. 1999년에는 사리 장엄구를 비롯한 다양한 유물이 탑 속에서 발견되었다.

 

임진왜란 때 소실된 것을 1636년(인조 14)에 재건하였다고 하는데 중건 당시 인조의 숙부인 의창군이 써서 내려준 현판을 그대로 사용해 대웅전이 되었다고 한다.

 

대웅전 앞에서 바라본 각황전

서오층석탑 (보물 제133호) 이 탑은 보기 드물게 십이지신과 여덟 무리의 신들, 하늘 세계를 지키는 사천왕이 함께 새겨져 있다. 조각과 장식이 많아 동오층석탑과 달리 화려하다. 1995년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을 비롯하여 청동불상, 청자항아리 등 47점의 유물이 발견되었다.

 

나한전과 원통전

각황(覺皇)이라는 말은 부처의 별명으로, 깨달음의 황제라는 뜻이다

사자탑과 석등

원통전 앞 사자탑 (보물 제300호) 아래 기단의 면석에 갓기둥와 버팀기퉁이 없는 불단형식으로 몸돌은 네모난 기둥처럼 우뚝하게 길며, 각 면에는 사천왕상이 얕게 새겨져 있다. 이 탑을 노주라고도 부르는데 그 성격은 확실하지 않다.

 

화엄사 석등 (국보 제12호) 신라 의상조사가 각황전 앞에 조성한 것으로 국내 최대의 석등(높이 6.4m, 직경 2.8m)이다. 꽃의 8잎(우담바라화)은 팔정도이며, 4개의 화창은 사성제를 의미한다. 북의 모습은 진리의 소리이니, 즉 팔정도로 수행하여 사성제의 이치를 밝혀주시는 부처님의 참다운 모습을 형상화한 석등이다.

 

적멸보궁은 석가모니 부처의 진신사리를 모신 법당을 말한다

화엄사 사사자 삼층석탑 보수관계로 탐방객의 안전사고 발생과 사사자 삼층석탑 보존을 위해 당분간 관람을 할 수 없다하여 사사자삼층석탑은 직접 보지 못했다.

4사자3층사리석탑 (국보 제35호) 신리 선덕여왕 14년(645) 자장율사가 부처님 진신사리 73과를 모시고 사리탑과 공양탑을 세웠다. 연기조사가 오른 어깨에 옷을 벗어 메이고 오른 무릎을 땅에 붙이고 머리에 석등을 이고 왼손에는 찻잔과 구슬(불성)을 받쳐 들고 어머니에게 진리의 공양을 부처님께는 차 공양을 올리는 모습. 효 사상의 공양탑이라 하며, 일명 효대라고도 부른다.

 

화엄사 각황전 앞에서 마당을 내려다본 모습, 가깝게는 서탑이 멀리는 동탑이 보인다. 마당에서 각황전을 올려다 본 모습, 서탑과 석등 각황전이 보인다.

 

아이가 얼른 가자고 재촉하여 구층암에는 올라가 보지 못해 아쉽다. 날이 춥고 휑하니 마음도 급하고 얼른 자리를 떠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다음에는 따뜻한 봄이나 선선한 가을에 구례 화엄사를 찾아 좀더 여유있게 둘러보고 싶다.

 

내려오는 길에 만월당 방문 앞에 매달린 곶감이 그림같았다. 3, 4월에는 길상암 매화나무(천연기념물)과 만월당 백매를 만나러 다시, 구례여행을 가봐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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