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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뭉치

은희경 [빛의 과거]

by 이우유 2019. 10.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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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희경 작가의 여덟 번째 장편소설, 빛의 과거

20대의 나는 신경숙과 은희경의 책을 정말 사랑했지만, 어떤 일을 계기로 신경숙 작가의 글을 읽지 않게 되었다. 은희경 작가의 글은 그동안 내가 마음의 여유가 없어서였을까, 미혼 때의 감성이 사라진 탓인지 묘하게 읽히지 않게 되었다. 그녀에게 새의 선물이나 타인에게 말걸기는 싸이가 강남스타일을 넘지 못하는 것과 같은 이치가 되려나? 나에게 입력된 그녀의 마지막 문체는 2009년 황순원문학상 수상작품집에서 읽은 [다른 모든 눈송이와 아주 비슷하게 생긴 단 하나의 눈송이]였다. 제9회 수상작 박민규의 [근처]를 읽기 위해 구입한 터였다.

 

사설이 길었다. 여튼 오랜만에 은희경 작가의 책을 접했다. 무려 7년만에 나온 장편소설이다. 괜히 도서관에서 빌려 읽기는 싫어서 구입했고, 처음부터 끝까지 소리내어 읽었다. 가끔씩 책을 소리내어 읽고 녹음을 하곤 하는데, 이유없이 그냥... [빛의 과거]는 소리내어 읽고 싶었다.

 

파일을 저장해두지는 않았지만, 한번씩 소리내어 읽고 녹음한 것을 다시 듣고 하였으니 두번 정독한 셈이다. 엄청 긴 문장도 있었는데 혀가 꼬이지 않고 잘 읽어지는게 신기했다. 부정적인 뉘앙스로 길게 풀어 낸 문장도 그녀 특유의 유머러스함이 더해져 부드럽게 넘어갔다. 더 이상은, 내가 뭐라고 가타부타 할 수 없어서 발췌로 대신한다.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불현듯 깨달았다. 첫사랑의 죽음에는 애도 기간이 필요없다. 나에게 그 여름은 주인공이 죽어버려서 더 이상 뒷얘기가 중요하지 않게 된 비극의 에필로그 같은 것이었다. 아니 주인공의 죽음과 상관없이 비극에는 에필로그가 필요없다. 잊는 것만이 완전한 애도이다.


"참되고 아름다운 문학은 작가가 자신과 자신이 속한 사회와의 관계를 이해하려는 노력 속세어 생겨난다는 것을 밝히는 것이 이 책의 목적이다." 선 채로 서문을 세 번쯤 읽고나서 그 책을 샀다. '참되고 아름다운'이란 표현 속에 깃든 씩씩한 희망과 순정함이 웬일인지 내 마음을 조금 아프게 만들었다.


 

학창 시절 세계문학전집에 빠졌지만 나는 서머싯 몸의 [인간의 굴레]는 읽지 않고 건너뛰었다. 주인공 소년이 절름발이라고 놀림을 받는 설정이 말더듬이였던 작가 자신의 처지를 반영하고 있다는 해설을 어쩌다 먼저 읽고는 전혀 흥미가 생기지 않았던 것이다. 같은 처지끼리 공감을 느끼고 거기에서 위로와 격려를 얻는다는 건 허튼소리다.


 

젊고 희로애락이 선명하고 새로 시작하는 일도 가능했던 시절이었다. 그 시절의 인생이 더 나았을까. 꼭 그렇지는 않았을 것이다. 욕망이나 가능성의 크기에 따라 다른 계량 도구를 들고 있었을 뿐 살아오는 동안 지녔던 고독과 가난의 수치는 비슷할지도 모른다. 일생을 그것들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해도 나에게만 유독 빛이 들지 않았다고 생각할 만큼 내 인생이 나빴던 것도 아니다. 그리고 이제 세상이 뭔가 잘못됐다면 그 시스템 안에서 살아남으려 했던 나의 수긍과 방관의 몫도 있다는 것을 알 나이가 되었다.

 

소설(일기?) 속 '김희진' 같은 사람은 아주 짜증 나는 타입이지만, 현실세계에는 그보다 더 역겨운 이들과도 마주하기에 그 정도쯤이야 애교로 넘길 수 있다,고도 말할 수 있는 나이가 되었다. 마흔즈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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